그런데 올해 정상회의는 일본 오사카에서 6월28일과 29일 열렸다. 해마다 보통 연말쯤 해서 열리던 회의가 올해만은 6월에 열렸다. 개최국인 일본이 강력히 희망했기 때문이었다. 7월 21일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는 일본 아베 총리 입장에서는 왼편에 중국 국가주석 오른편에 미국 대통령을 세운 채, 정상들 한 가운데 서있는 장면을 연출하는 건 나쁘지 않았다. 당연히 G20 효과를 기대했을 아베 총리에게 실망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G20 정상회의가 끝나자마자 더 인상적인 장면이 한국의 DMZ에서 연출됐던 것이다. 기껏 애써서 6월로 정상회의 일정을 잡은 게 헛수고가 되는 상황이었다. 뭔가 획기적인 이벤트가 필요했다.
대법원 판결이후 대책반을 총리 산하에 만들었지만 해법을 만들지 못했다. 결국 국무총리와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이 나섰다. 각료들 가운데서도 비교적 대통령과 편하게 속내를 얘기할 수 있는 두 사람은 따로 대통령과 자리를 만들어 문제를 풀기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얘기에 대통령은 법률가로서의 입장을 밝혔다. 행정부 입장이 사법부 입장과 다를 수 없다는 것, 대법원의 판결로 결정된 일에 정부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아무 조치도 나오지 않았다. 정부는 올 상반기부터 일본의 보복에 대응해 준비해왔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실행 방안을 만든 적은 없다. 설마 하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후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에 1965년 청구권 협정에 기초한 외교협의와 중재위 설치를 요구해왔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일본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다 중재위 설치와 관련된 답변 시한인 6월18일을 하루 넘긴 19일, 한국과 일본 기업이 자발적 출연금으로 재원을 조성해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방안은 사실은 발표 며칠 전, 일본에 비공식적으로 전달했지만 일본정부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힌 방안이었다. 일본 정부가 이미 거절했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 정부는 이를 발표했고, 이미 일본 정부가 거절한 방안을 한국 정부가 공식 발표하는 모습에 일본은 격앙했다.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최종안은 경제산업성이 5월 중에 마무리해놓은 상태였고 아베총리는 적절한 발표 시기만 찾고 있던 중이었다. 외교적 교섭을 해야 하는 외무성은 의도적으로 배제됐다.
사실은 업계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의 규제조치 발표가 나온 뒤 정부는 당황했다. 그동안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해명을 하기 위해 청와대부터 직접 나섰다. 부총리는 라디오로, 청와대 정책실장은 TV로 달려갔다. 청와대 정책실장은 정부가 제재 품목 예상 리스트를 작성해 둔 사실을 공개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업계에서 예상해 청와대에 전달한 리스트다. 일본은 다음달 1일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발표한다고 한다. 백색국가 제도는 일본이 우방국가에 대해 개별 품목 수출 허가를 면제해 주는 것으로, 한국이 백색국가에서 빠지면 일본은 거의 모든 제품에 대해 수출 규제를 실시할 수 있게 된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은 이제 경제 분쟁으로 확대됐다. 대통령은 피해가 정말 발생한다면 필요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밝혔다. 어떤 대응을 검토하고 있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보복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어떤 보복이든 우리 피해가 더 크다. 정부는 일단 부품 소재 산업을 키우겠다고 발표했다. 올바른 방향이긴 하지만 당장의 대응책은 아니다. 세계무역기구 제소, 역시 시간이 오래 걸린다. 게다가 WTO 위반이라고 보기도 애매하다. 미국이 중재에 나선다면 일이 풀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미국이 나서서 누구 편을 들 수도 없다.
[김상철 한국경제언론인포럼 회장/MBC논설위원/前 인하대 겸임교수/前 금융감독원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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