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에 일부 보험사들이 판매에 나섰던 ‘미니보험’ 상품은 고객들의 관심 모으기에는 유리하지만, 수입보험료가 그만큼 적어 사실상 수익 창출 기능은 약하다는 것이 시장의 평가였다.
그러나 삼성생명은 보험업계 자산규모와 영업력 측면에서 1위를 지키고 있는 업계 최대 생명보험사다. 별다른 홍보 없이도 ‘삼성’이라는 이름만으로 충성도 높은 고객 확보와 충분한 데이터베이스를 지니고 있을 이들이 미니보험 판매에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볼 수 있다.
◇ 삼성생명, 커피값도 안 되는 연 7900원 대 ‘미니 암보험’ 공개
다른 보장 없이 암 진단에 대해서만 보장함으로써 보험료 수준을 획기적으로 낮춘 것이 특징이다. 1종과 2종으로 나눠 판매되며, 보험기간은 3년이다. 1종은 주요 암을 보장하며, 특히 기존에 소액 암으로 분류됐던 전립선암·유방암·자궁암 등도 주요 암과 같은 금액으로 보장한다. 보장금액은 최대 500만원이다.
30세 남성이 주보험 가입금액을 500만원으로 할 경우 연간 보험료는 7905원이다. 3년치 보험료를 한 번에 내면 할인되어 2만2585원이다.
2종은 보장범위가 좁은 대신 보장금액은 1종의 2배인 최대 1000만 원이다. 30세 남성이 주보험 가입금액을 1,000만원으로 할 경우 연간 보험료는 2040원, 3년치 일시납보험료는 5030원이다.
기존 암보험은 가입하고 90일 이후부터 1년 이내 암 진단을 받으면 보장금액의 50%만 지급되었다. 하지만 ‘미니 암보험’은 90일이 경과하면 100% 지급된다. 가입나이는 20세부터 55세까지이며, 삼성생명 컨설턴트 또는 다이렉트 홈페이지를 통해 가입할 수 있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미니 암보험은 비교적 소액으로 가입할 수 있어서 젊은 고객들이 보험을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든 상품”이라며, “앞으로도 보험의 장점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상품을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 처브라이프 등 중소형사 전유물이던 미니보험, ‘경쟁불가’ 삼성생명 등장에 ‘울상’
처브라이프는 지난해 월 180원대의 유방암 전용 보험을 선보이며 업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바 있다.
처브라이프생명의 ‘Chubb 오직 유방암만 생각하는 보험(무)’은 여러 암 중 오로지 유방암 한 가지만을 집중적으로 보장하는 온라인 전용상품이다. 20세 여성 기준 월 180원, 30세 여성 기준 월 630원에 유방암 진단시 500만 원의 보험금을 지급하는 식이다.
처브라이프 본사는 세계적인 보험사로 이름이 높지만, 국내에서는 잦은 사명 변경 등 악재가 겹치면서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채 업계 중하위권을 맴돌며 고전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랬던 처브라이프는 지난해부터 온라인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며 KB국민카드, 삼성카드 등과 제휴를 맺으며 판매채널 확장에 나서는 것은 물론, 스몰티켓이나 굿초보 등 보험 플랫폼과도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미니 유방암보험 판매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보험료가 너무 낮아 이익이 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 처브라이프 측은 “2030 세대의 유방암 발병률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해 책정된 보험료”라고 설명했다. 높아지는 유방암 발병률 등 관련 분야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는 상황에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상품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앞서 보험 공동구매 플랫폼 ‘인바이유’는 MG손해보험, 한화손해보험 등과 손잡고 불필요한 특약을 없애 핵심 보장만 남긴 월 1500원대 미니 운전자 보험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보험업계는 연이은 가계경제 불황 등으로 보험에 대한 소비자들의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거품을 걷어낸 맞춤형 미니 보험 상품들이 각광받을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던 바 있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 업계 1위 공룡 보험사 삼성생명이 미니보험을 들고 나오면서 기존에 미니보험을 취급하던 중소형 보험사들에게는 어떠한 방식으로건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게 됐다.
단적인 예로, 기존에 미니 유방암보험을 판매하던 처브라이프생명의 올해 2분기 자본 총계는 1335억 원 규모였다. 반면 삼성생명의 2분기 자본총계는 25조5661억 원으로 나타났다. 배수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압도적인 차이다.
이와 관해 삼성생명 관계자는 “다른 보험사를 의식해서 상품을 만든 것이 아니라, 단지 젊은 고객들을 유입시키기 위한 미끼상품의 일종”이라며, “시장조사를 통해 아직 수요가 충분하다고 판단해 상품을 론칭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생명은 올해 초에도 다른 보험사들과 달리 기존에 판매하지 않던 ‘저해지환급형 종신보험’ 상품과 ‘치아보험’ 등 신상품을 연달아 선보였다.
특히 삼성생명의 치아보험은 업계 최초로 진단형 설계가 가능하도록 해 보험업계의 특허권인 배타적 사용권을 획득했으며, 하루에만 2만 건의 판매고를 올리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삼성생명이 이처럼 이례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데에는 IFRS17을 앞두고 보험시장이 포화되며 업계 전체가 유례없는 불황을 맞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가계경제 악화와 저축성보험 감소 등이 겹치면서 올해 상반기 전체 생명보험사의 수입 보험료는 52조7878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 가량 감소했다.
우량 고객들을 위주로 안정적인 영업을 이어오던 삼성생명 역시 이를 타개하기 위해 ‘자존심’을 굽히고 ‘실리 챙기기’에 나섰다는 목소리도 업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중소형 보험사를 비롯한 보험업계 일각에서는 불만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중소형 보험사 한 관계자는 “업계 1위인 삼성생명이 과연 미끼 상품까지 풀어가며 판촉에 나설 필요까지 있을지 의문”이라며, “규모의 경제가 강하게 적용되는 보험업계에서 삼성생명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면 중소형 보험사들은 떨어져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 한화·교보 등 경쟁사, 온라인 채널 통해 실험적 상품 선보여
이처럼 업계 1위로서 시장을 이끌고 있는 삼성생명이 미니보험 시장에 발을 들임에 따라, 업계 2, 3위를 다투는 경쟁사인 한화생명과 교보생명 등이 ‘미투 상품’을 내놓을지도 관심의 대상이다.
앞서 한화생명은 지난 5월 미니보험 트렌드에 맞춰 다이렉트채널 온슈어를 통해 어린이보험 신상품 ‘한화생명 e어린이암보험(무)’을 판매에 나섰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사망보장’을 없애고 암에 대한 집중 보장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보험료를 낮추는 동시에, 온라인전용상품으로 합리적인 가격을 책정한 것이 특징이다. 30세 만기 10년납 주계약 2500만원 가입 시 7세 남자아이 기준 보험료는 6750원, 여자아이의 경우 6250원 수준이다.
교보생명은 아예 온라인 전업 보험사를 별도 계열사로 분리시켜 실험적인 미니보험 상품들을 선보이고 있는 업계 선도자에 속한다. 국내 유일 온라인 전업 보험사를 표방하는 ‘교보라이프플래닛생명’이 그 주인공이다.
라이프플래닛의 ‘(무)e입원비보험’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20대부터 70대까지 최대 25일의 연령별 연간 지급한도를 설정하여 불필요한 보장은 줄이되 합리적인 보험료를 실현했다.
암이나 허혈심장질환, 뇌혈관질환 등으로 입원할 경우 ‘특정질병재해 입원보험금(기본 입원보험금의 200%)’을 추가로 지급해 든든하게 보장한다. ‘(무)e수술비보험’은 수술종류에 따라 수술 1회당 최소 10만원에서 최대 100만원의 수술보험금을 지급한다. 40세 남성 기준 라이프플래닛 입원비보험과 수술비보험의 월 보험료는 5000원 대로 저렴하다.
다만 이와 관해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수입보험료 자체가 낮은 상품을 박리다매로 팔아봤자 큰 소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애초에 미니보험 상품은 수익을 내기 보다는 보험에 대한 소비자의 부정적 인식을 없애고, 젊은 층을 대상으로 미래 수요를 창출하기 위한 전략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니보험 상품들은 올해 4월 ‘실손보험 끼워팔기’가 금지된 상황에서 보험사들이 택할 수 있는 ‘플랜B’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약이 많아 고액이 되기 쉬운 종신보험 상품 등에서 ‘미니보험’이라는 형태로 특약을 분리시켜 단독 상품으로 판매하는 방식이 채택될 수 있다는 뜻이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언더라이팅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보험 상품 자체가 다양해지고 있는 추세”라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상품을 취사선택할 수 있어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호성 기자 hs6776@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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