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위원장은 이날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자본시장연구원 개원기념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정부가 그동안 생산적 금융과 혁신성장을 강조해온 가운데 이러한 대책의 핵심은 자본시장의 역할 제고가 있다”며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자본시장의 역할에 대한 현황을 진단했다.
최 위원장은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큰 창업 및 성장 초기의 기업에 대한 자본공급은 자본시장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며 “선진국을 중심으로 전세계 벤처·중소기업에 대한 투자자금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의 경우 벤처자금이 2012년부터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기준 850억달러(약 95조원)에 달한 반면 우리나라의 벤처자금은 23조803억원에 그쳤다. 또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미국의 벤처자금 연평균성장률은 13.6%, 한국은 11.9%로 나타났다.
이어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기업공개(IPO) 기준만을 간신히 넘는 스몰 위너를 만드는 데 그쳐 상장하고 나서 기업가치가 크게 증가하는 회사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상황”이라면서 “전 세계 유니콘 기업에서 국내 기업의 비중은 1%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중소·벤처기업 IPO 평균 소요기간 14년
그러면서 “국내 벤처캐피털의 지난해 신규조성 펀드 중 민간자금 비중은 46.1%에 불과해 미국 88%, 유럽 79%에 비해 현저히 낮다”며 “정책자금은 속성상 공적규제를 받고 기회균등을 고려해야 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소수 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비상장기업에 대한 자금중개 기능도 미흡하다고 밝혔다. 그는 “상장기업에는 일반 투자자는 물론 전문투자자도 투자에 참여해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이 원활하지만, 비상장기업은 한정된 폭의 전문투자자만 참여하고 있다”며 “실제로 지난해 기준 상장기업이 자본시장을 통해 조달한 자금 42조원인 데 비해 비상장기업에 대한 직접 금융조달자금은 6772억원에 그쳤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미국과 유럽의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는 금융회사나 연기금 등 민간 기관투자자 주축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개인 전문투자자 비중 역시 높다”며 “이들 국가의 벤처 투자자금은 10%를 개인 전문 투자자가 공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우리나라 기업의 창업부터 IPO까지 평균 소요기간은 지난해 기준 14년 4개월로 초기투자를 아예 받지 못하거나 중초기 투자를 받은 후에도 IPO 단계에서 급격한 자금고갈을 겪는다”며 “성장단계에 맞춰서 연속으로 자금을 공급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우려했다.
◇자금조달 막는 공적규제 ‘장벽’
최 위원장은 우리나라 자금조달과 관련된 제도가 공적규제가 강하고 비상장기업에 호의적이지 않다는 점을 문제로 짚었다. 그는 “특히 자본시장에서 자금조달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증권사의 중개 기능이 상장기업 위주로 마련돼있다”며 “중소기업 자금조달을 위한 크라우드펀딩에도 각종 법령 제한이 있어 많은 기업이 혜택을 받기 어렵고 기회를 잡은 기업에도 자금조달 한도가 낮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증권회사의 규제체제도 적극적으로 비상장기업을 발굴 및 육성하는 것을 저해하고 있다”며 “증권회사가 5% 이상 주식을 보유한 기업은 IPO 주관이 금지돼 있어 원스톱 서비스를 지원하는 데 제약이 있고 증권담보대출도 예탁된 증권으로 한정돼 있어 비상장기업에 대한 자본공급이 제한적”이라고 판단했다.
증권회사에 적용되는 차이니즈 월 등 여러 가지 사전적 규제도 자본시장의 역동성을 저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증권회사가 핀테크 회사에 업무를 위탁하기도 쉽지 않다”며 “자본시장법상 증권사에 대한 업무 인가단위도 60개가 넘는 등 복잡한 인가절차 신사업 진출을 크게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했다.
◇자본시장 통한 중소·벤처자금 조달 체계 개선
최 위원장은 혁신기업이 비상장 상태에서도 자본시장을 통해 원활히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며 앞서 언급한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한 자본시장 개혁의 기본방향을 제시했다.
우선 최 위원장은 “직접 금융시장(자본시장)을 간접 금융시장(대출시장)과 경쟁이 가능한 수준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또 “비상장기업인 사적 자본시장을 일반 기업 위주의 전통적 자본시장으로 확장하기 위해 맞춤형 규제체계를 설계하겠다”면서 “혁신기업 자금공급에 증권사가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체제도 정비하겠다”고 했다.
최 위원장은 “공개적인 자금조달을 허용하고 자본시장을 활용한 동산금융을 활성화하기 위해 자산 유동화 제도를 전면 재정비하겠다”며 “중소기업이 신용평가를 받지 않아도 자산 건전성이 우수하면 대출을 원활히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개인 전문투자자 육성을 강화하기 위해 전문투자자 요건을 정비하고 등록 및 인증 절차도 간소화하겠다”며 “주간증권사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기업공개(IPO) 제도를 혁신해 증권사 자금중개 기능을 획기적으로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최 위원장은 현행 포지티브 규제체계를 네거티브 규제체계로 전환하겠다고 했다. 그는 “증권회사의 자금중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사전규제를 최소화하고 사후규제를 강화하겠다”며 “차이니즈 월과 관련해 개정법령에서는 정보교류 차단의 원칙만을 제안하고 개별 증권사 상황에 맞게 자율적으로 설정 및 운영하도록 맡기겠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사전보고를 통해 업무를 위수탁하는 것을 강하게 규제하고 있는데 허용범위를 대폭 확대하고 사후보고로 전환하겠다”며 “인가 체계도 진입절차를 다변화해 업무 확장 시 심사 절차를 최소화하겠다”고 했다.
최 위원장은 “규정 개선사항은 올해 중에 완료되는 것들도 있지만 상당 부분은 자본시장법을 개정해야 하기 때문에 올해 정기국회에 법안을 제출해도 시행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며 “가급적 빨리 이러한 방향성이 이뤄지도록 추진하겠다”고 부연했다.
한아란 기자 aran@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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