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두 회사가 각각 외국계 보험사와 은행계 보험사로 성격 자체가 판이하게 다른 것은 물론, 젊은 영업조직을 바탕으로 활발한 대면채널 영업을 자랑했던 ING생명의 조직이 텔레마케팅 및 방카슈랑스 채널 위주 영업에 강점을 지니고 있던 신한생명과 제대로 융화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ING생명은 오는 9월 3일부터 새로운 사명인 ‘오렌지 라이프’로의 출발을 알린 상태다. 이들은 23일 임시 주주총회를 거쳐 사명변경을 최종 승인했으며, 향후 1주일가량의 실무 절차를 거쳐 상품 및 서비스명에 새로운 사명을 적용할 예정이다.
이는 M&A 건과는 무관한 MBK파트너스의 브랜드 상표권 계약 만료로 인한 것으로, 당초 계약은 올해 연말까지로 예정돼있었다.
ING생명은 새로운 사명의 마케팅 및 홍보비용을 포함한 리브랜딩 작업에 약 250억 원 가량의 예산을 책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새 사명은 약 2년간 고객신뢰도 조사, 해외 벤치마킹, 브랜드전문 컨설팅 등을 진행해 결정했다. 고객들은 오렌지라이프가 기존 ING생명과 연계성이 높고 친근하다는 이유에서 높은 선호도를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새 CI(기업이미지)는 고객의 삶을 든든하게 지키고 보호한다는 의미를 담아 방패 형상으로 만들었다.
정문국닫기정문국기사 모아보기 ING생명 사장은 “오렌지라이프는 ING생명의 브랜드 이미지와 고객의 신뢰를 담았고 사명 자체로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고객의 활기찬 삶을 상징한다”며 “고객 중심의 강한 혁신 의지를 표현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 “오렌지라이프로 바뀌는 것도 걱정인데....”신한금융 인수되면 이름 또 바뀔까 노심초사
문제는 대면채널, 즉 설계사 영업 현장의 반응이다. 사명변경 과정에서 기존 상품이나 서비스의 이름이 바뀔 경우 설계사들은 이에 의문을 갖는 가입자들을 상대로 응대를 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
ING생명이 상표권 만료로 사명을 변경하기로 했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공지된 사실이라 설계 현장에서도 별다른 불만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간 ING생명이 주력으로 판매했던 상품들의 이름에도 ‘ING’라는 이름보다는 ‘오렌지’라는 이름이 더 강조돼서 판매되고 있었기에 브랜드명이 갑자기 바뀌더라도 큰 타격이 없을 것이라는 설명도 있었다. 실제로 ING생명이 현재 판매하고 있는 대부분의 상품에는 ‘ING’라는 수식어가 거의 붙어있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문제는 신한금융지주와의 M&A가 급물살을 타면서부터 발생했다. ING생명이 신한금융의 품에 안길 경우, 이미 신한금융의 생명보험사로 자리 잡고 있는 신한생명과의 합병이 이뤄지면서 다시 한 번 사명 변경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ING생명에서 오렌지라이프로의 사명 변경은 이를 미리 대비하고 매겨진 상품명과 비슷한 색감으로 인해 큰 이질감이 없지만, 푸른색 계열의 CI와 이미지를 가져가고 있는 신한금융 및 신한생명과 비교하면 다소 괴리감이 느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사명변경은 영업 현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동부화재가 DB손해보험으로, 알리안츠생명이 ABL생명으로 이름을 바꾸는 과정에서도 약간의 혼란이 있었다. 당시 영업 현장에서 설계사들은 새 명함을 고객에게 전하면서 ‘사명이 바뀌었다’는 설명을 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그런가하면 잦은 사명 변경으로 인해 전속설계사 이탈로 영업에 어려움을 겪었던 처브라이프 국내법인의 사례도 있다.
처브라이프는 1992년 미국 뉴욕생명과 국내 고합그룹이 합작한 ‘고합뉴욕생명’으로 출발한 이후, 1999년 고합그룹의 철수와 함께 ‘뉴욕생명’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러다 2011년 뉴욕생명마저 철수하며 이를 ACE그룹이 인수해 ‘에이스생명’이 됐다가, 2016년 스위스 보험그룹 ‘처브’가 인수되며 ‘처브라이프’로 간판을 바꾸는 등 오랜 잡음을 겪었다.
오렌지라이프로의 사명 변경은 이미 회사 차원의 대비가 일찍부터 이뤄져오고 있었으므로 영업 현장도 이를 각오하고 있었다는 반응이지만, 만약 신한생명과의 M&A로 다시 한 번 사명이 바뀌면 설계사들의 피로감과 고객들의 혼란이 더욱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브랜드명이 주는 영업 효과는 사측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며, “영업 현장이 혼란에 빠지면 계약유지율 측면에서 많은 손해가 발생할 수 밖에 없으며, 이를 이유로 자발적 이직을 통해 다른 보험사나 GA로 옮겨간 설계사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15년 경력의 현직 보험설계사 A씨 역시 “젊은 사람들은 몰라도 나이 많은 고객 분들은 회사의 이름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신다”며, “사명이나 상품명만 바뀌고 상품 내용에는 변화가 없다고 설명해드려도 거부감을 느껴 상품을 해약하는 고객들도 더러 있다”고 전했다.
이 설계사는 “특히 보험 판매의 관건은 신뢰를 줄 수 있느냐의 문제인데, 이름이 계속 달라진다면 자칫 미덥지 않은 인상을 줄 수 있다”고 경계하기도 했다.
◇ 성격 다른 ING-신한, ‘일사천리’미래에셋생명 통합과는 거리 있어
지난해 말 기준 신한생명과 ING생명 자산규모는 각각 29조 원, 31조 원이었다. 만약 두 보험사가 통합하면 총자산 60조 원 가량의 매머드 생보사가 탄생하게 되어 4위인 NH농협생명의 64조 원도 넘볼 수 있는 덩치가 된다.
ING생명과 신한생명 모두 타 보험사에 비해 IFRS17을 앞두고 재무건전성 확보에 주력해왔던 만큼 합병 시너지도 쏠쏠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입보험료, 당기순이익 등 모든 분야에서 삼성생명·한화생명·교보생명의 뒤를 잇는 4위 자리를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신한금융지주는 ING생명과 신한생명의 통합을 놓고 아직까지 명확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회사의 성격이 다른데다가, 생보업계의 전반적인 상황 자체가 좋지 않아 과감히 합병 작업을 진행하기에는 애로사항이 있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생보업계는 IFRS17 도입에 대비해 저축성보험 비중을 줄이고 보장성상품 위주로의 체질개선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전체적인 영업익의 급감을 경험했다.
지난 3월 완료된 미래에셋생명과 PCA생명의 M&A에서는 양사의 주력상품이 변액보험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고, 하만덕닫기하만덕기사 모아보기 부회장이 PCA생명으로 건너가 인수합병을 진두지휘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가 눈에 띄었다.
그 결과 성공적인 통합을 이룩한 미래에셋생명은 변액보장형 및 변액투자형 매출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보이며, 상장 생보사들 가운데 상반기 709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며 전년대비 80.2%로 가장 큰 영업이익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한생명과 ING생명은 각각 은행계 보험사, 외국계 보험사로 기본적인 성격에서부터 차이가 나며, 상품 구성이나 영업 측면에서도 뚜렷한 공통점이 없어 중간지점을 찾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
따라서 2017년 5월 인수가 결정된 이후 올해 3월 통합이 마무리될 때까지, 1년이 채 안 되는 빠른 시간에 일사천리로 진행된 미래에셋생명의 통합 과정과는 달리, 이들 두 회사의 통합에는 다소간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이에 보험업계는 신한생명과 ING생명이 한동안 합병 없이 ‘투 트랙 전략’을 가져갈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과거 중국 안방보험에 인수된 동양생명과 ABL생명이 통합 없이 각자 도생으로 운영됐던 것과 비슷한 형태다.
양사가 특별히 경영상의 문제를 떠안고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업계 상위권의 안정성과 영업 채널을 유지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결코 무리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대면채널 영업과 방카슈랑스 영업에 각각 강점을 가지고 있었던 두 회사가 당장 어설프게 합병을 진행하다가는 각자가 지닌 강점도 제대로 살리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일각에서는 2021년 도입 예정인 IFRS17이 변수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회계기준 변화라는 결정적 시기에서 투 트랙 전략을 고수하기에는 위험부담이 크다는 설명이다.
이에 보험업계는 두 회사가 적어도 2021년 전까지는 합병 작업을 마무리하고 ‘통합신한생명’ 등의 이름으로 출발해 새 국제회계기준에 공동 대응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장호성 기자 hs6776@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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