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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식 사태와 미투 프레임

기사입력 : 2018-04-16 00:00

(최종수정 2018-04-16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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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식 사태와 미투 프레임
[한국금융신문 구혜린 기자] "같이 출장 간 인턴이 남자였어도 이랬을까"
김기식닫기김기식기사 모아보기 금융감독원장의 '인턴 동행 외유성 출장 논란'을 지켜보던 어느 여성 금융인의 말이다. 김기식 원장은 정무위 소속 의원 시절 피감 기관 예산으로 9박10일 해외출장을 다녀왔다. 피감 기관 돈으로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는 사실 만큼이나 논란이 된 것은 여자 인턴과 동행했다는 점이었다.

일각에선 이 과거 사건을 미투(MeToo)와 연결해보려는 시도가 다수 있었다. 미투는 피해자의 폭로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이 문제와는 상관이 없지만, 안희정 전 의원의 혐의와 비슷하게 '여자 문제'로 엮어보려 했던 것이다. 당시 인턴이었던 김씨가 출장 이후 9급에서 7급 공무원으로 승진한 것과 김 원장이 공천 탈락 후 몸담았던 '더미래연구소'에 까지 김씨를 데리고 갔다는 점은 구설수를 만들기에 좋은 소재가 됐다.

이들이 활용한 기술은 미투 프레이밍(framing, 틀짓기)이다. 프레이밍은 본질적으로 다른 두 사건을 하나로 합치하는 힘이다. 그리고 의도적 선택과 의도적 주변화의 기술이다. 전략적 장치로는 상징적 언어, 이미지, 스토리 등이 쓰인다. 정당의 캠페인에서 프레이밍 기술은 주로 활용된다. 조지 W. 부시의 감세 공약(2009)이 세금 '구제'라는 언어를 덧입고 부자 증세를 찬성해야 할 계층에게까지 지지를 받은 것이 대표적이다. 언론은 정당의 프레임을 차용해 보도하고, 직접 프레이밍 하기도 한다.

김씨의 사례를 보자. 3가지 정황이 안희정 미투와 엇비슷한 프레임을 구성했다. 김기식 원장이 '국회의원' 시절, '여비서'를 대동하고, '특혜를 받았다고 생각할만한 일(해외출장, 고속승진)'을 벌였다는 중첩이다. 고도의 단어 선택은 두 사건을 교묘하게 일치시킨다. 출장 동행 시기 김씨의 신분은 인턴이었음에도 '여비서'가 강조됐다. 특혜를 지적할 때는 '인턴'이 두드러지며 '로마출장'과 '고속승진'이 뒤를 이었다.

이 사건은 사실 뜯어보면 김씨의 고용 형태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김씨를 둘러싼 의혹은 두 가지 질문으로 압축할 수 있는데 '(김기식 원장의 해명대로) 김씨가 관련 분야 전문가라면, 왜 석사학위 소지자를 인턴으로 채용했는가', '왜 1년이 못 돼 9급에서 7급으로 승진시켰는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회에 몸담은 사람들은 '국회의 고용 형태는 의원실 수 만큼이나 케이스가 다양하다'는 의미심장한 답변을 내놨다.

석사를 마치고 의원실에서 인턴으로 재직한 경험이 있는 A씨는 "갓 석사를 졸업한 사람의 경우 사회 경험이 하나도 없으니 의원실 입장에선 바로 급수를 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또한 의원실에서 돈을 아끼려고 고스팩자를 인턴으로 쓰느냐는 추가 질문엔 "의원실마다 상황이 달라서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정말 돈을 아끼려고 하는 경우엔 대학생들을 특보로 뽑아서 인건비를 주지 않고 일주일에 하루 이틀 나와 업무보조를 하게 하기도 한다."고 답변했다.

승진의 경우도 쉽게 말하면 '케바케(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인턴에서 보좌관까지 4년만에 패스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인턴으로만 3년 이상 보내는 경우도 있다. A씨는 "본인 능력이 출중해서 9급에서 7급 승진하는 케이스가 있는데 그걸 두고도 능력에 비해 낮은 직급을 받았다고 얘기가 나오기도 한다. 4~5급은 결원이 생기면 외부에서 등용하는 경우가 많고, 6급 이하 결원은 내부승진을 시킬 때가 많다. 이마저도 의원실 상황에 따라 유도리 있게 일이 진행돼서 9급에서 7급 승진이 자연스럽다, 부자연스럽다고 평가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즉, 국회라는 공적 환경은 투명하지 않은 채용구조 탓에 사적인 프레임을 덧입히기 더없이 좋은 구조다. 국회 보좌진이 채용・해고가 자유로운 '별정직 공무원'인 이유는 의원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의정활동 내용에 따라 마음껏 보좌진을 변경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미투 프레이밍은 그를 둘러싼 당시의 상황이 이러했다는 것을 고려할 수 없게 만든다.

미투 프레이밍이 주변화한 또 다른 정보는 김씨가 '해외에서 의원을 보좌할만한 능력이 있는 인물인가' 하는 점이다. 이러한 논점을 배제한 채 김씨가 '여성이기 때문에 동행인으로 선택됐다'는 식의 은근한 프레이밍은 사회적 환경 덕택에 공분을 사는 데 성공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 준비 기간을 연장하기 위해 아르바이트, 대학원 등을 전전하는 청년들은 '특혜'라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프레이밍의 공포는 특정 계층이 처한 상황을 자극해 사실 판단을 유보한 상태의 감정을 동원한다는 지점에서 발견된다.

김씨는 야시꾸리한 프레임에 휩쓸린 대중의 뭇매를 맞았다. 현재 그는 연구소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피해 은신 중이다. 사건이 잠잠해질 때까지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할 수 없다. 그의 SNS 프로필 사진과 휴대전화 번호, SNS 계정 등이 일간베스트 등 커뮤니티를 떠돌고 있다. 댓글은 무자비하다. 명예훼손으로 법적 공방까지 갈 기미가 보인다. 더 두려운 건 김기식 원장이 금감원장 자리를 지키든 지키지 않든 '김기식의 여비서'라는 말이 오래도록 꼬리표로 따라다닐 가능성이다. 김 원장의 도덕성을 따지기 위한 요소로 과거 김씨와의 출장이 언급되는 것은 불가피했다. 하지만 불필요한 프레이밍이 불필요한 피해를 낳은 건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구혜린 기자 hrgu@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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