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도입 논의에 착수하자, 금융권이 술렁이고 있다. 수십 년간 안정적으로 유지돼 온 결제 생태계가 거대한 변곡점 앞에 섰기 때문이다. 이미 해외에서는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이 송금과 온라인 결제를 빠르게 잠식하며 기존 질서를 흔들고 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은행, 카드사, PG·VAN 등 전통 인프라 사업자는 근본적인 생존 전략을 다시 세워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가장 먼저 충격을 받을 분야는 연간 200조 원 규모에 달하는 체크카드, 즉 직불 결제 시장이다. 스테이블코인은 원화와 1대1로 연동되는 디지털 자산으로, 계좌나 카드 없이 전자지갑만으로 결제가 가능하다. 빠른 속도와 낮은 수수료는 기존 결제 방식을 충분히 위협한다.
글로벌 금융사는 이미 결제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비자는 지난해부터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USDC)을 일부 정산에 활용했다. 과거 하루 이상 걸리던 해외 결제가 몇 분 만에 끝나고, 외환 수수료 부담도 크게 줄었다. 금융사는 리스크를 줄이고, 소비자는 편리함을 얻는다.
스테이블코인 지갑은 카드사보다 더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구현한다. 해외송금, 온라인 소액결제, 플랫폼 결제 등 주요 영역이 빠르게 대체될 수 있다.
이미 수수료 인하로 수익성이 약화된 상황에서, 카드사 타격은 불가피하다. 단순한 결제 채널을 넘어 차별화된 가치를 내놓지 못한다면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PG를 거치지 않는 직결 결제가 확산 중이다. 애플페이, 구글페이 같은 빅테크 결제는 카드망을 생략하는 구조를 지향한다. 여기에 스테이블코인까지 더해지면 PG·VAN사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 “구조 개편 없이는 급속한 쇠퇴가 불가피하다”는 위기감이 커지는 이유다.
그렇다고 스테이블코인이 카드사에 위협만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카드사들은 350만 가맹점과 전 국민 회원 네트워크라는 견고한 기반이 있다. 스테이블 코인이 유통되려면 가맹점을 확보해야 한다. 직불 결제가 스테이블코인으로 대체되더라도 이를 관리·운영할 주체는 이미 회원사인 가맹점을 관리해온 카드 업계가 될 공산이 크다.
이 유통망은 단순한 기술 혁신으로는 대체할 수 없는 자산이다. 은행이 발행하고 카드사가 유통을 맡는 협업 모델, 혹은 카드사가 직접 발행해 자체 네트워크에서 거래를 처리하는 방식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실제로 카드사들과 여신금융협회는 한국은행 논의에 맞춰 발행·유통 태스크포스를 꾸려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다.
소비자 혜택 측면에서도 카드사는 여전히 뚜렷한 경쟁력을 지닌다. 현재 미국, EU, 일본, 홍콩은 이자 제공을 금지하고 있다. 우리도 미국식 법안을 따를 가능성이 크다. 은행이 발행하더라도 제공할 수 있는 이익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반면 카드사는 가맹점 할인, 포인트 적립, 무이자 할부, 멤버십 연계 등 다양한 부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여기에 신용공여 기능까지 더하면 스테이블코인 결제와는 명확히 차별화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결국 카드사와 인프라 사업자가 직면한 현실은 ‘종말’이 아니라 ‘전환’이다. 승부는 누가 더 빨리 위기를 기회로 바꾸느냐에 달려 있다. 가맹점 네트워크, 신용공여, 혜택 서비스를 지렛대로 삼아 ‘스테이블코인 시대의 주도권’을 쥐는 쪽이 시장을 선점할 것이다. 반대로 대응이 늦는다면 결제 인프라의 키는 글로벌 빅테크가 가져가게 될 것이다. (금융총괄국장)
김의석 한국금융신문 기자 eskim@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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