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한국에서 금융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소비하는 가계보다 투자하는 기업으로 자금이 흘러가게 해서 성장률을 올리는 것이었다. 수출 증대와 산업구조 고도화도 중요한 목표였다. 그것은 ‘관치금융’ 시비를 불러왔지만 고도성장을 이루는 바탕이 되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금융을 그냥 시장논리에 맡길 수는 없고 다른 목표와 연계시키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새로 떠오르는 과제는 금융을 사회적 목표와 연계시키는 것이다. 특히 기후 변화가 인류 최대의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유럽중앙은행 라가르드 (Lagarde) 총재를 필두로 이 문제 해결에 금융이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게 되었다. 기후 변화 같은 인류 최대의 관심사를 기업의 이윤추구 동기나 재정정책, 규제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금융도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도 앞으로 금융을 사회적 목표와 연계시키는 것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문재인정부에서 내세운 그린뉴딜에는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금융정책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당장 더 현실적인 것은 사회적 약자의 생산 활동에 대한 금융이다. 지난 10여 년 간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이 사회적 약자의 생산주체로 떠올랐고, 그에 대한 지원책도 시행되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이라면 감세나 보조금 등 재정을 써서 도와주는 것이 더 투명하고 후유증도 적을 것이다. 그러나 금융은 그 효과에서 재정을 압도할 수 있다.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약자의 생산 활동도 재정에만 의존할 수는 없고, 금융도 일정한 역할을 해 주어야 할 것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까. 사회적 약자의 생산 활동에 대한 금융 지원은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지금까지 시행된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에 대한 대출이 부실화되는 정도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 금융기관이나 정부가 부실채권을 어느 정도까지 감당해 줄 것인지에 대해 방침을 세워야 할 것이다.
금융을 다른 목표와 연계시키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 한국의 경험은 바로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앞으로의 추세는 사회적 목표와 연계시키는 쪽이 될 가능성이 크다.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이 가장 큰 과제가 되겠지만, 한국의 입장에서 당장 점검이 필요한 문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금융이다. 이 문제를 점검하고 더 발전시키는 것이 기후 변화 같은 더 큰 목표 쪽으로 가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이제민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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