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기를 하루 앞둔 5월물에 대한 패닉 매도가 나타나자 다음 월물인 6월물이 장중 20% 가량 폭락하면서 20달러선까지 하락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WTI 선물 콘탱고 확대가 단기 유가 하방 압력이었다"면서 "최근 배럴당 7달러 이상까지 확대된 WTI 선물 1차월물(6월)-최근월물(5월) 간 스프레드가 5월물 만기인 21일을 앞둔 롤오버 물량에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롤오버를 포기한 대량 매도세까지 쏟아진 것이 WTI 선물 5월물 가격 폭락을 초래했다"고 밝혔다.
현지시간 20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5월물 가격은 전장보다 55.90달러(305.97%) 낮아진 배럴당 -37.63달러를 기록했다.
ICE 선물거래소의 브렌트유는 2.51달러(8.94%) 내린 배럴당 25.57달러에 거래됐다.
특히 만기일이 하루 앞두고 무조건적인 셀 오프가 나올 수 밖에 없어 '마이너스' 유가라는 초유의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뉴욕 시장에선 장중 서킷브레이커 발동으로 WTI 거래가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선물 만기를 하루 앞두고 거래량이 급감한 와중에 단기 매수세가 증발하면서 유가가 마이너스 영역까지 내려온 것이다. 즉 5월물 매도와 6월물 매수를 통해 롤오버를 하려고 했으나 매도를 받아줄 세력이 없자 5월물 가격이 바닥없이 고꾸라졌다.
5월물 매수 포지션을 6월물로 롤오버하지 못하면 원유를 현물로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으나 선물 트레이더가 이러기는 어렵다. 선물 매매자는 만기 전에 롤오버하거나 청산
해야 한다. 아니면 정유사·항공사 등 현물 실수요자에게 넘겨야 한다.
하지만 거래가 여의치 않자 선물 트레이더가 오클라오마 쿠싱에 가서 원유 실물을 인수해야 하는 상황까지 몰린 것이다. 트레이더는 결국 비용도 많이 들고 저장할 곳을 찾기도 어려워 손절 매물을 내놓았고 유가는 레벨 불문하고 급락한 것이다.
최근 5월물과 6월물의 콘탱고가 이례적으로 확대된 뒤 월물 교체 과정에서 정상적인 시장 작동에 한계가 왔던 셈이다.
호된 경험을 치른 탓에 향후 WTI 6월물 만기시 재연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는 진단도 제기된다.
수급 상황이 풀리지 않으면 6월물 만기일인 5월21일을 앞두고 이와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날의 경험은 향후 선물 계약 처리를 서둘게 만들거나 만기가 좀더 멀리 있는 원월물 거래를 자극할 수 있다.
■ WTI 5월물 마이너스는 특이사례...하지만 20달러 수준의 6월물 부담도 여전
김광래 삼성선물 연구원은 "코로나19 사태가 없었고 최근월물과 다음월물 간의 가격 차이가 $0.5~$1인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5월물이 $20 전후에서 마무리 되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이번 이상 사태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코로나19의 전세계적 확산에 따른 실물 수요 급감(가솔린, 항공유)과 4월 OPEC+의 증산(감산은 5월부터 시작 예정)에 따른 최근월물의 가격 눌림 현상, 이후 실제 감산에 대한 기대와 코로나19 정체에 따른 향후 수요개선 기대 등이 콘탱고를 강화시켰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원유 재고 급증, 해상재고와 항구재고 등 저장 공간 부족(트레이더들이 유가 급락 후 유조선이나 원유 저장시설에 현물을 축적했다가 향후 상승했을 때 파는 차익거래 형태 영향)으로 인해 5월물과 6월물간의 콘탱고가 이례적으로 확대됐고 롤오버가 진행(5월물 매도와 6월물 매수)되는 가운데 매도 물량을 받아줄 주체가 사라지면서 가격이 '수직낙하'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만기를 하루 앞두고 있기 때문에 기존 5월물 매수자들 중 실물 인수가 어려운 대부분 경우 강제 청산(매도)되고, 실물 인수를 받은 곳의 경우에는 막대한 보관비용, 보험료, 운송료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월물 매도세가 집중되는 가운데 차익 거래를 위한 트레이더들의 매수세가 부재한데다 실물 수요까지 급감해 급격한 가격 하락이 나타난 것이다.
결국 오는 21일 선물 만기를 앞둔 롤오버와 반대매매 때문에 유가가 급락한 가운데 현재 20달러 수준인 6월물의 가격 안정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진단도 제기되고 있다.
수급 우려가 워낙 커 투자심리도 여차하면 매도 우위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최진영 이베스트증권 연구원은 "시장 참가자들은 이미 이전부터 콘탱고 상황을 고려해 새판짜기에 돌입한 상태"라며 "6월물 가격 흐름은 어떻게 될지 단기적 방향을 단언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곧 근원물이 될 6월물의 경우 여전히 리스크가 크다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만만치 않게 쌓인 숏 포지션을 감안할 때 상황을 낙관하기는 어렵다.
최 연구원은 "6월물에 대한 Put 옵션($20~25) 미결제약정이 꾸준히 증가하는 등 시장은 여전히 하락 가능성을 감안하고 있다"면서 "시장 참가자들 입장에서는 현재의 불안정한 수급 상황, 30~35% 밖에 남지 않은 상업용 석유 저장시설 유휴 캐파 등을 감안하면 근월물보다는 최소 8월물 이상의 매수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 당장 유가 크게 오르기 어렵지만...장기적으로 점진적인 상승 기대도 남아
최근 OPEC과 산유국들이 감산에 합의했으나 과잉공급 우려는 해소되지 못했다. 산유국의 일평균 970만 배럴 감산에도 공급이 많다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비행기가 뜨지 못하는 등 사실상 수요는 크게 위축돼 있다. 사람의 이동이 제한되는 상황에서 원유 수요는 부진할 수 밖에 없다.
IEA는 4월 일평균 원유수요가 2,900만 배럴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처럼 수요가 급감하는 상황에서도 공급은 쉽게 줄지 못했다. 사우디,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은 4월 산유량을 큰 폭으로 늘렸고 미국의 산유량도 급감하지 않아 원유 재고가 빠르게 늘어났다.
심수빈 키움증권 연구원은 "지난주 미국 오클라호마 쿠싱 지역의 원유 재고는 이 지역의 저장 최대 용량(19년 9월 기준) 중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면서 "연초 저장량이 42%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클라호마 지역의 원유 재고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5월 내 이 지역의 원유저장고가 포화상태에 달할 수 있다는 소식은 유가에 부담"이라고 평가했다.
공급 과잉과 함께 수요가 언제 회복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불확실성도 유가 반등에 대한 자신감을 떨어뜨린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인적 이동제한, 물류 마비 문제가 해결돼야 OPEC+ 감산 실효성도 평가가 가능하다"면서 수요 불확실성이 유가에 부담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장기적으로 보면 유가의 하락압력은 둔화될 수 있다. 현재 원유 선물 커브도 이를 반영하고 있다.
상반기 내 여전히 코로나19로 인해 수요 개선 기대가 약한 만큼 저유가 흐름은 이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최근 주요 산유국의 감산으로 증산 우려가 일부 해소됐고 5월 중으로 주요 국가의 경제 재개가 기대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유가 하락 압력은 점진적으로 완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심수빈 연구원은 "만기가 멀어질수록 국제유가 하락이 제한적이었고 8월물 이후 선물 간 스프레드가 1달러 미만 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시장에서는 원유시장이 하반기에는 안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고 밝혔다.
장태민 기자 chang@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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