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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 Hobby] 세기의 거장 백남준 이해하기

기사입력 : 2020-07-10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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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드라마 주인공으로 나오는 강마에는 신임시장 취임식에서 존케이지의 4‘33“를 공연한다. 철학적 공연이라고 설명한 후 지휘봉을 들고만 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시장을 골탕먹이기 위함이었다. 이 음악은 존케이지라는 작곡가의 1952년의 작품으로 총 3악장으로 이뤄진 곡이다.

4분 33초라는 정해진 시간 동안 연주자가 아무런 음악도 연주하지 않는다. 이것도 예술이란다. 백남준은 이러한 예술가인 존케이지, 요셉보이스 등과 같이 현대미술을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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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틀을 과감히 부순 혁신가

백남준은 플럭서스 행위예술가로서, TV를 이용한 새로운 형식의 비디오 아트를 개척한 사람이다.

1960년 <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습작(Etude for Piano Forte)>이라는 공연에서 쇼팽을 연주하다가 울다가 피아노를 부수다가 관중석으로 내려간다.

거기서 존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르고 옆에 있던 데이비드 튜더(존 케이지 음악연주가)의 머리를 샴푸로 감기고 공연장을 떠난다. 근처 술집에서 공연 끝이라고 전화로 알린다.

그의 유명한 일화 중에는 미국 대통령 조롱하기도 있다. 1998년 6월 고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한 기념 만찬에서 클린턴이 지나갈 때 백남준의 하의가 자동으로 내려간다. 물론 속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

천하의 백남준이 실수할 리는 만무했다. 아마도 당시의 르윈스키 성추문 사건에 대한 조롱이 아니었을까.

그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1963년 독일 파르나스 화랑에서 <음악 전람회-전자텔레비전 (Exposition of Music-Electronic Television)>이라는 제목으로 개최한 개인전이다. 여기가 바로 비디오 아트의 탄생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13대의 TV, 3대의 피아노, 소음기 등을 설치해 놓고 텔레비전 브라운관에 자석을 움직이면서 이미지가 움직이게 하거나 지나가는 사람의 소리와 만지면 화면의 그림이 변하는 소통의 자리가 시작됐다. 첨단 기술문명에 동양과 한국의 문화와 사상을 담아내기 시작한다.

피아노를 부수면서 음악의 규범에 항거하고, 소리를 보여주면서 시각예술과 소리예술의 관계를 생각하고, 텔레비전 화면에다 관객의 움직임과 동작에 반응하는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인간과 과학과 사회적 연결고리를 생각하게 한다.

1967년 뉴욕에서 미국의 첼리스트 샬럿 무어먼(Charlotte Moorman, 1940∼1994)과 함께 음악에 에로티시즘을 도입한다. <오페라 섹스트로니크(Opera Sextronique)>를 연주하던 도중 작곡가 백남준과 무어먼은 음란한 어떤 행동을 했고, 경찰에 붙들려 가기도 했다.

1969년에는 <살아 있는 조각을 위한 TV 브래지어>를 공연한다. TV 브라를 착용하고 첼로를 연주하는 무어먼의 가슴에 찬 화면에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촬영된 비디오 영상, 사람들 모습, 첼로의 소리에 따라 텔레비전 화면이 변하는 영상,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장면 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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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한 모든 것을 예술로 만들어낸 창조적 천재

백남준 선생은 일제 시대인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집안에 태어난 그는 누나의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비싼 라디오를 해체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18세에 한국을 떠나 일본과 독일 미국 등지에서 미술사학과 음악을 전공한다.

사실 백남준, 이름은 들어보았는데 어떤 예술가로서 왜 유명한지는 잘 모르는 이들이 많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로비에는 1003개의 모니터 탑이 있다. 각종 그림들이 번쩍거린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이다.

<tv부처>라는 작품이 있다. 가부좌를 틀고 있는 부처상과 텔레비전이 마주보고 텔레비전 위에는 비디오 카메라가 설치되어 모니터에 부처의 머리와 가슴이 나온다.

가상의 것과 실상의 것, 동양과 서양, 본인과 본인을 바라보는 외부요인 등을 이야기 한다고 했다면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인 백남준은 음악의 흐름 그 자체를 그림으로 보여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예술운동의 플럭서스 맴버로서 비디오아트의 창시자로, 혹은 90년대 이후의 레이저 아트로의 발전에 이르기 까지 동양의 정신과 사상을 서양의 것과 접촉을 시도했다. 불교사상과 무당, 토속신앙 등을 겉으로 드러내면서 현실과 환상의 소통을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백남준 선생이 유명해진 이유는 너무 많다. 1960년대 미술운동인 플럭서스의 일원으로서 정신활동이 곧 예술이라는 시대를 감지한다.

음악의 곡을 회화로 표현하고자 했던 칸딘스키와는 달리 백남준은 음악 자체를 시각화하고자 했다. 또한 존케이지와 함께 음악의 고정관념을 해체시킨다.

해프닝을 예술의 개념으로 전환시키거나 비디오를 예술의 재료로 삼아 비디오 아트를 창시한 것. 동양의 정신을 서양의 예술형식에 담아낸 것. 우리나라의 무속신앙을 첨단 예술의 소재에 기록한 것. 인공위성을 이용해 지구상의 해프닝을 실시간 예술로 통합한 것 등 너무나 많은 기록들을 가지고 있다.

“모든 것은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다. 그래서 전자와 인공을 결합시키면 모든 것을 생산해 낼 수 있다. 따라서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이미지 자체가 아니라, 이미지를 어떻게 만드느냐이다. 나는 이미지를 만드는 기술적이고 물질적인 조건, 즉 수평적 수직적 탐구에 관심을 갖는다”고 했다.

과거 진공관 브라운관으로 텔레비전을 시청할 때 늦은 밤, 애국가가 끝나면 ‘삐’소리가 나면서 밝은 빛의 줄이 생긴다. 이것을 주사(走査)선이라고 한다.

요즘의 픽셀을 빠르게 이동시키면 하나의 줄처럼 보이는 것과 같다. 백남준은 1963년에 ‘선(禪)을 위한 TV(Zen for TV)’라고 해서 의도적으로 주사선을 만들고, 1965년에는 자석을 이용해 주사선을 흔들어 댄다.

이것이 비디오 아트의 시작이다. 최초가 최고가 아니라 최고가 최초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그는 정해진 규칙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신과 창조성을 중심으로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 나간 예술가이다.

1997년에는 독일 캐피탈이 선정한 세계 100인 작가 중에 8위에 올랐고 2000년에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과 서울의 로댕갤러리, 호암갤러리에서 대규모 회고전 <백남준의 세계전 The Worlds of NamJune Paik>이 열렸다.

백남준은 시간이라는 것에 집중한 예술가이기도 하다. 옛날 비디오를 조작할 때 정지 빨리감기, 되감기를 손으로 직접 했었다. 영상은 거기에 따라 스토리를 미리 볼 수도 있고, 다시 볼 수도 있었다.

이러한 비디오의 조작을 세상을 향해 예술로 정착시킨 예술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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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사는 한국금융신문에서 발행하는 '재테크 전문 매거진<웰스매니지먼트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박정수 정수아트센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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