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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9(금)

‘욕먹을 용기’가 필요한 국민연금

기사입력 : 2018-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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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장호성 기자이미지 확대보기
▲ 사진: 장호성 기자
[한국금융신문 장호성 기자] 문재인 정부는 앞선 두 정부보다도 ‘서민 보호’를 강조하는 정책 기조를 펴고 있다. 복지정책은 물론 금융정책에서도 그러한 기조가 나타나고 있는데, ‘포용적 금융’라는 슬로건에서 그 흔적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탐탁찮게 보는 사람들은 문재인 정부의 행보가 지나치게 포퓰리즘에 쏠려있다며 비판하고는 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적어도 이번 정부가 ‘약자의 편’에 서려 한다는 노력 자체는 인정하고 싶다.

이번 정부는 적어도 지난 두 정부에 비해 친서민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쉬운 부분이 있다. 바로 수 십 년 째 바뀌지 못하고 표류 중인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이야기다.

국민연금제도는 1988년 도입 당시부터 문제가 많았다. 당시 국민연금은 보험료율 3%, 소득대체율(평균소득 대비 노후 연금수령액 비중) 70%로, 보험료율 대비 20배나 후한 소득대체율을 책정했었다.

1997년 1차 연금개편 당시 이러한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12.65%까지 올리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가입자들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되고 말았다.

제도시행 첫 해 3%에서 시작해 5년에 3%씩 두 차례 올라 9%가 된 보험료율은 1998년 이후 20년 째 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이어진 4차 재정추계에서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연금 재정계산 3개 위원회(재정·제도·기금운용)는 또 다시 2가지 안을 제시했다. 1안은 소득대체율(이하 대체율) 45%에다 내년부터 보험료를 2%포인트 올리고, 2034년 1.31%포인트 추가 인상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이번 개편안 역시 공개된 직후 국민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고 말았다. 개정안 발표 직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수 만 건이 넘는 국민연금 개편 반대, 폐지를 비롯한 청원글이 쏟아졌다.

이들 청원의 요지는 ‘더 내고 덜 받을 거면 뭐 하러 가입하나’, ‘내가 늙었을 때 연금을 탈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연금을 내는 것은 불안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에 매년 1.5조 원 가량의 적자를 내고 있어 국민 혈세가 투입되고 있는 군인연금 개혁이 더 시급하다는 지적도 심심찮게 나오는 상황이다.

이처럼 보험료율 인상을 놓고 국민반발이 심해지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민 동의 없는 연금 개편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물며 ‘국민의 편’을 자처하고 나선 문 대통령이었기에 더욱 더 이러한 스탠스를 취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미 수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했듯, 현재 국민연금은 급격한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절벽 현상으로 인해 조기고갈을 앞둔 상태다.

게다가 이미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은 OECD 평균보다 보험료율은 훨씬 낮고, 소득대체율은 더 높다. 내는 보험료에 비해 훨씬 많은 연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겉으로만 봐도 국민연금 개편의 필요성이 절실한 상황에서 개혁이 번번이 파행으로 돌아간 것은 각종 선거를 의식한 정부의 국민 눈치 보기가 고질적인 원인이었다. 태생부터 잘못됐던 국민연금 제도라는 ‘폭탄’을 누구 하나 나서서 책임지고 터트리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쌓였던, 미루고 미뤄왔던 문제를 치유하기 위해, 이 과정에서 수반되는 언론과 국민의 반발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것을 인내하는 것도 오롯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국민연금은 정치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도구로 쓰여서는 안 된다. 명색이 국민의 편안한 노후를 책임지기 위해 존재하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바로 국민연금의 취지 아니었던가.

1863년, 미국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국민들의 반발과 불안에도 불구하고 흑인 노예들을 해방한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공표했다. 비록 작은 한 걸음이었지만 그의 결단은 수 백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영향을 미치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더 가까운 예도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 시장을 지내던 당시 개통했던 청계천은 공사 당시 ‘혈세 낭비’라며 거센 반대에 직면했었다.

그러나 2018년 현재 청계천은 시민들의 산책로이자 외국인들의 관광 명소로 손꼽히며 서울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누군가는 나서서 욕을 먹고, “그 동안 국민연금은 잘못 운영돼왔다”며 머리 숙이고 사과할 ‘욕먹을 용기’가 필요하다. 비록 지금은 이것이 작은 한 걸음일 수 있지만, 가까운 미래 후손들에게는 이 작은 용기가 커다란 업적으로 남을 것이다.

장호성 기자 hs6776@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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