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교훈을 얻는다면 이 혼란의 탄핵정국에 좀 더 현명하게 살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모든 일엔 대가가 따른다. 그래서 공짜 점심이란 있을 수 없다는 교훈 말이다. 따지고 보면 세상의 모든 문제들, 이를테면 재테크나 자녀교육, 직장에서의 승진이나 연봉, 심지어는 궁극적인 행복, 나아가 '어떻게 살 것이냐'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공짜 점심은 없다는 한 가지만을 기억한다면 그다지 마음 졸일 일도, 골치 아플 일도 없다. 세상 살기도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설을 앞두고 최근 발표된 금융당국의 서민금융지원정책은 경기 부진과 시장금리 인상으로 서민층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에 대비한 채무탕감책이라 하지만 서민들이 처한 현실을 외면한 보여주기식 처방이란 지적이 많다. 지난 16일 발표된 서민·취약계층 지원 강화 방안에는 4대 서민금융상품인 미소금융·햇살론·새희망홀씨·바꿔드림론의 문턱을 일제히 낮췄으며, 정책서민자금 공급규모도 늘렸다. 아울러 상환능력이 취약한 채무자에겐 빚 탕감 확대 방안까지 내놓았다.
이번 박근혜 정부의 채무부담 경감책은 2013년 3월, 2015년 6월, 2016년 9월에 이어 다섯 번째다. 그렇지만 지난해 금융당국이 서민금융지원 실적이 당초 목표치에 비해 초과 달성했다며 자화자찬 한지가 불과 6개월 만에 새로운 방안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정책 실패를 자인한 것인지 묻고 싶다.
금융에서의 시장 기능이란 신용도가 좋으면 낮은 금리에, 신용도가 좋지 않으면 높은 금리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에 '서민'이라는 정책적 판단이 개입하면서 문제가 꼬이기 시작한다. 서민금융 정책이 필요 없다는 얘길 하려는 게 아니다. 몇 가지 부작용을 침소봉대해 서민금융 정책 전체를 폄하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서민 금융에도 원칙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원칙은 시장 기능이다.
일견 정부가 보증해주는 서민금융은 모두가 행복한 정책처럼 보인다. 신용이 낮은 이는 돈을 낮은 금리로 빌려서 좋고, 정부는 서민한테 인심 쓰고 표 얻어서 좋고, 금융권은 정부가 보증해주니 돈 떼일 일 없어서 좋고. 하지만 이것은 변형된 폭탄 돌리기다. 사회 전체적인 모럴 해저드를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보증을 하고 나서는 순간, 돈을 빌리는 이들은 ‘당연히 안 갚아도 되는 돈’으로 돈을 빌려주는 금융회사들은 ‘안 받아도 그만인 돈’으로 인식하게 된다는 얘기다.
물론 서민금융지원정책은 대상이 되는 이익집단이 무수히 많고,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있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정책의 도입과 집행, 개선은 언제나 "정부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만큼 서민들이 빚의 수렁에 빠질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정부는 이처럼 변화된 상황을 발 빠르게 서민정책에 반영하고 수립된 대책을 신속하게 집행해야만 한다. 사회안정을 위한 최소한의 정책은 세심하면서도 선제적이며 신속해야 하기 때문이다.무엇보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인식이 전체 사회에 뿌리내리도록 장기적 안목으로 서민들을 도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가계부채를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키우지 않으려면 정권에 따라 출렁거리지 않는 채무 조정 프로그램을 내놓아야 한다.
좋은 취지의 서민금융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선 보다 정교한 설계는 물론 제대로 된 창구 지도가 선행돼야 한다. 모두가 행복한 정책이 아니라 모두가 불행한 정책이 되선 곤란하다. 그 부담은 다음 정권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지게 된다.
김의석 기자 eskim@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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